해남으로 향하는 길, 완도항이 코앞으로 다가온 국도변에서 우연히 발견한 ‘북일기사식당’. 낡은 간판에 쓰인 ‘기사식당’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모험심을 자극했다. 전라도 밥상은 실패가 없다는 믿음, 그리고 알뜰한 가격에 푸짐한 식사를 즐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고, 식당 위로 솟아오른 붉은 글씨의 간판은 정겨운 느낌을 자아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박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넓은 홀에는 나무 테이블들이 간격을 두고 놓여 있었고, 창밖으로는 해남의 정겨운 풍경이 펼쳐졌다. 벽에 걸린 낡은 시계와 달력, 그리고 여러 개의 액자들이 이곳의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했다. 왠지 모를 푸근함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테이블 위에는 이미 갈치찜이 놓여 있었다. 메뉴판조차 없는 이곳에서는 백반 단 하나만을 판매하고 있었다. 주문할 필요도 없이, 인원수대로 음식이 나오는 시스템이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남도의 푸짐한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곧이어 상다리가 휘어질 듯한 백반 한 상이 차려졌다. 20가지가 족히 넘어 보이는 반찬들이 빈틈없이 테이블을 메웠다. 삭힌 홍어, 제육볶음, 조기 매운탕, 계란 후라이, 회 초무침, 꼬막 무침, 잡채, 고등어조림 등…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기사식당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급 한정식집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상차림이었다.

가장 먼저 삭힌 홍어에 젓가락이 향했다. 톡 쏘는 암모니아 향이 코를 자극했지만, 묘하게 끌리는 맛이었다. 쫀득한 식감과 함께 입안 가득 퍼지는 홍어 특유의 풍미는, 막걸리를 절로 떠올리게 했다. 뒤이어 맛본 제육볶음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매콤달콤한 양념이 입맛을 돋우었다. 돼지 특유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신선한 채소와 함께 쌈으로 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조기 매운탕은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갓 끓여져 나온 매운탕은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렸고, 숟가락을 멈출 수 없는 중독적인 맛을 자랑했다. 조기의 살은 부드럽고 촉촉했으며, 국물은 밥을 말아 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계란 후라이는 반숙으로 구워져 나왔는데, 노른자를 톡 터뜨려 밥에 비벼 먹으니 고소함이 배가 되었다. 회 초무침은 신선한 회와 채소들이 새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려져 있었고, 입안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꼬막 무침은 쫄깃한 꼬막과 매콤한 양념의 조화가 훌륭했고, 젓가락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잡채는 쫄깃한 면발과 다채로운 채소들이 어우러져 있었고, 고소한 참기름 향이 식욕을 자극했다. 고등어조림은 부드러운 고등어 살과 짭짤한 양념이 밥도둑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외에도 김치, 나물, 젓갈 등 다양한 반찬들이 하나하나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일부 방문객들은 반찬의 종류는 많지만, 실제로 손이 가는 반찬은 몇 가지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또한, 음식 맛이 달거나 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입맛 차이를 감안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특히, 8천 원(현재는 1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이처럼 푸짐한 남도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배가 터질 듯이 불렀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누룽지는 포기할 수 없었다. 따뜻한 물에 불린 누룽지는 구수한 향기를 풍겼고, 입안을 깔끔하게 마무리해 주었다. 식당 한 켠에는 자판기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달콤한 커피 한 잔은 완벽한 마침표가 되어 주었다.
북일기사식당은 화려한 인테리어나 특별한 서비스는 없지만, 푸짐한 양과 저렴한 가격,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로 승부하는 곳이다. 마치 시골 할머니 댁에 방문한 듯한 푸근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해남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저렴하고 맛있는 남도 음식을 찾는 사람들에게 북일기사식당을 강력 추천한다.

돌아오는 길, 북일기사식당 앞에서 판매하는 해남 꿀 고구마를 한 상자 샀다. 달콤한 고구마 향이 차 안 가득 퍼졌고, 든든한 식사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남도의 인심이 아닐까. 다음번 해남 방문 때도, 북일기사식당에 들러 푸짐한 백반을 맛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