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매운 음식을 끔찍이 싫어했던 내가 어쩌다 매운맛에 중독되었을까. 마치 운명처럼 이끌려 간 곳은 바로 용두동 쭈꾸미 골목이었다. 그 좁다란 골목길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쭈꾸미 집들 사이에서, 유독 나의 시선을 잡아 끈 곳이 있었으니. 간판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쭈꾸미” 세 글자가 묘하게 정겹게 느껴졌고, 왠지 모르게 이곳이라면 나의 매운맛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을 거라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아담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은 몇 개 놓여 있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더욱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벽 한쪽에는 메뉴판이 붙어 있었는데, 쭈꾸미볶음 외에도 삼겹살, 계란찜 등 소박하지만 정감 있는 메뉴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쭈꾸미볶음 2인분을 주문했다.

주문을 마치자, 할머니께서 능숙한 솜씨로 밑반찬을 가져다주셨다. 쌈무, 깻잎, 콩나물무침, 그리고 시원한 홍합탕까지. 특히 직접 만드셨다는 쌈무와 파무침은 쭈꾸미볶음과의 환상적인 조합을 예감하게 했다. 뽀얀 국물 위로 옹기종기 떠오른 홍합들이 어서 빨리 맛보라며 나를 유혹하는 듯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쭈꾸미볶음이 등장했다. 빨갛게 양념된 쭈꾸미 위로 듬뿍 올려진 콩나물과 떡사리가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했다. 매콤한 향이 코를 자극했고,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쭈꾸미를 바라보며, 어서 빨리 맛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진에서 보이는 쭈꾸미는 탱글탱글한 식감을 자랑하며, 붉은 양념이 깊게 배어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콩나물의 아삭함과 쭈꾸미의 쫄깃함이 어우러져 환상의 맛을 선사할 것만 같았다.

젓가락을 들고 쭈꾸미 한 점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칼칼하면서도 깔끔하게 매운맛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고, 쫄깃한 쭈꾸미의 식감이 혀를 즐겁게 했다. 과장 없이, 내가 먹어본 쭈꾸미볶음 중에 단연 최고였다. 매운맛을 달래주는 쌈무와 깻잎의 조화 또한 훌륭했다. 특히 깻잎 특유의 향긋함이 매운맛을 중화시켜주어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홍합탕은 쭈꾸미볶음의 매운맛을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은 소주를 부르는 맛이었다. 홍합의 신선함이 그대로 느껴졌고, 국물 또한 깔끔하고 시원했다. 쭈꾸미볶음을 먹다가 매울 때쯤 홍합탕을 한 모금 마시면, 입안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사장님은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셨는데,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시면서도 손님 한 명 한 명을 살뜰히 챙기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친할머니 댁에 온 듯한 푸근함이 느껴졌고, 할머니의 따뜻한 정 덕분에 더욱 기분 좋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쭈꾸미 맛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자, 할머니는 환한 미소로 화답해주셨다.
어느 정도 쭈꾸미를 먹고 난 후, 볶음밥을 주문했다. 쭈꾸미 양념에 밥을 볶아 먹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 코스였다. 김가루와 참기름이 더해진 볶음밥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맛이었다. 특히 볶음밥과 함께 먹는 파김치는 정말 꿀맛이었다. 톡 쏘는 파김치의 알싸함이 볶음밥의 느끼함을 잡아주어, 숟가락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계산을 하려고 하자, 할머니께서는 포장도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마침 아버지께서 쭈꾸미를 좋아하시는지라, 2인분을 포장해달라고 부탁드렸다. 할머니께서는 1인분씩 정성스럽게 포장해주셨고, 콩나물과 떡사리도 넉넉하게 챙겨주셨다. 할머니의 따뜻한 배려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나오는 길에 가게 간판을 다시 한번 올려다봤다.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이 곳, 용두동 쭈꾸미 맛집. 화려한 인테리어나 트렌디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변하지 않는 맛과 푸근한 인심이 있는 곳이었다. 앞으로 쭈꾸미가 먹고 싶을 땐, 다른 곳은 생각도 나지 않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포장해온 쭈꾸미를 아버지께 드렸더니, 정말 좋아하셨다. 역시, 맛있는 건 알아가지고. 아버지께서도 쭈꾸미를 맛보시더니, “이야, 이 집 쭈꾸미 정말 맛있네! 맵기도 딱 적당하고, 양념도 아주 훌륭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칭찬에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다음 날, 아버지께서는 친구분들과 함께 그 쭈꾸미 집을 방문하셨다고 한다. 역시, 맛있는 건 널리 알려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친구분들께도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다들 쭈꾸미 맛에 감탄했다고 한다. 아버지 덕분에 그 쭈꾸미 집은 단골손님을 또 확보하게 된 셈이다.
그 후로도 나는 종종 그 쭈꾸미 집을 방문했다. 매번 갈 때마다 변함없는 맛과 따뜻한 인심에 감동했고, 그 곳은 나에게 단순한 밥집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힘들고 지칠 때, 매콤한 쭈꾸미볶음 한 접시와 시원한 홍합탕 한 그릇이면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듯했다.

용두동 쭈꾸미 골목에는 수많은 쭈꾸미 집들이 있지만, 나에게는 그 곳이 최고의 서울 맛집이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는 맛을 지켜온 주인 내외분께 존경을 표하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맛있는 쭈꾸미를 만들어주시길 바란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방문해야겠다. 분명 부모님도 그 맛에 푹 빠지실 거라고 확신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는 용두동 쭈꾸미 골목의 단골이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나를 알아봐 주시고, 항상 반갑게 맞아주신다. 이제는 쭈꾸미를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를 뵈러 가는 기분이다. 그 곳은 나에게 단순한 밥집이 아니라,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앞으로도 나는 그 곳을 꾸준히 방문하며, 할머니의 맛있는 쭈꾸미를 즐길 것이다. 그리고 이 맛있는 쭈꾸미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