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밍으로 온몸의 근육을 혹사시킨 어느 날 저녁, 문득 숯불 향이 코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고기 굽는 냄새가 온 신경을 사로잡았다. 전완근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더 이상의 에너지 소비는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래, 오늘은 무조건 남이 구워주는 고기를 먹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강남역 인근의 고깃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후보지 중에서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곳은 바로 ‘기운’이라는 곳이었다. 이름부터가 지친 나에게 필요한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망설일 틈도 없이 발걸음은 이미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강남역 4번 출구에서 10분 남짓 걸었을까, 은은한 조명이 감도는 ‘기운’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모던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외관이 여느 고깃집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잘 꾸며진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듯한 설렘을 안고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후끈한 숯불의 열기와 함께 코를 간지럽히는 맛있는 고기 냄새가 나를 반겼다.

내부 또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테이블 간 간격이 넓고, 칸막이로 분리된 좌석 덕분에 오붓하고 프라이빗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였다. 왁자지껄한 일반 고깃집과는 달리, 차분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테이블마다 설치된 묵직한 화로였다. 숯불의 은은한 온기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위로 연기를 빨아들이는 연통이 설치되어 있어 쾌적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였다. 고급스러운 분위기 덕분에 중요한 모임이나 데이트 장소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실제로 내가 방문했을 때도 청첩장 모임을 하는 테이블이 눈에 띄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갈비삼겹, 목살, 갈매기살 등 다양한 돼지고기 부위가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단연 시선을 끈 것은 ‘기운세트’였다. 갈비삼겹살과 야채 모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구성이라는 설명에 솔깃했다. 게다가 직원분이 직접 구워주신다는 문구는 지친 나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클라이밍으로 소진된 체력을 생각해서 ‘기운세트’에 갈비삼겹 1인분을 추가로 주문했다.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밑반찬들이 테이블 위를 가득 채웠다. 깻잎 장아찌, 갓김치, 묵은지, 백김치 등 다채로운 구성에 감탄했다. 하나하나 정갈하게 담겨 나온 밑반찬들은 맛 또한 훌륭했다. 특히 갓김치는 톡 쏘는 맛이 일품이었고, 묵은지는 깊은 풍미가 느껴졌다. 고기와 함께 곁들여 먹으니 느끼함은 싹 가시고, 입안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운세트’가 등장했다. 큼지막한 갈비삼겹살과 함께 파, 미나리, 애호박, 고사리 등 신선한 야채들이 푸짐하게 담겨 나왔다. 선홍빛을 띠는 갈비삼겹살은 보기만 해도 쫄깃함이 느껴졌고, 야채들은 싱싱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특히 큼지막하게 썰어낸 대파의 비주얼은 압도적이었다.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푸짐한 양에 감탄하며, 숯불 위에 고기와 야채를 올려놓았다.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갈비삼겹살이 숯불 위에서 익어갔다. 숯불 향이 고기에 은은하게 배어 들면서, 식욕을 자극하는 향기가 코를 찔렀다. 직원분은 능숙한 솜씨로 고기를 뒤집고 잘라주셨다. 고기가 타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 주시는 모습에 감동했다. 덕분에 나는 편안하게 앉아 고기가 익어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갈비삼겹살은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육즙이 좔좔 흐르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드디어 첫 점을 맛볼 시간. 잘 익은 갈비삼겹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의 정석이었다. 뼈에 붙어 있는 살을 숙성시켜서 그런지, 일반 삼겹살보다 훨씬 풍미가 깊고 육즙이 풍부했다. 쫄깃한 식감은 덤이었다. 돼지 특유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맛은 정말 최고였다.
다양한 소스와 곁들여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소금에 살짝 찍어 먹으니 고기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고, 깻잎 장아찌에 싸 먹으니 향긋한 풍미가 더해졌다. 갓김치와 함께 먹으니 느끼함은 싹 사라지고 입안이 개운해졌다. 특히, 와사비를 살짝 올려 먹으니 알싸한 맛이 고기의 풍미를 더욱 끌어올려 줬다. 어떤 조합으로 먹어도 맛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와사비와의 조합이 가장 맘에 들었다.

고기와 함께 구워진 야채들도 빼놓을 수 없었다. 특히 미나리는 특유의 향긋함이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줘 환상의 궁합을 자랑했다. 숯불에 구워진 애호박은 달콤한 맛이 극대화되었고, 고사리는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큼지막하게 구워진 대파는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맛이 매력적이었다. 야채와 고기를 함께 먹으니, 입안에서 다채로운 맛의 향연이 펼쳐지는 듯했다.
고기를 어느 정도 먹고 나니, 슬슬 탄수화물이 당기기 시작했다. 메뉴판을 다시 펼쳐 들고 고민하다가, 이곳의 숨겨진 히든 메뉴라는 ‘돈장술밥’을 주문했다. 뚝배기에 담겨 나온 돈장술밥은 보기만 해도 얼큰해 보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비주얼은 식욕을 더욱 자극했다.

돈장술밥을 한 입 맛보는 순간, 왜 이곳의 히든 메뉴라고 불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깊고 진한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넣은 듯한 맛이었는데, 일반적인 된장찌개와는 차원이 달랐다.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가 있어 국물이 더욱 진하고 깊었으며, 칼칼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특히 밥알에 깊게 배어 있는 된장의 풍미는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돈장술밥과 함께 주문한 물냉면도 훌륭했다. 쫄깃한 면발과 시원한 육수의 조화는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 줬다. 특히 살얼음이 동동 떠 있는 육수는 더위를 싹 잊게 해주는 청량감을 선사했다. 돈장술밥의 얼큰함과 물냉면의 시원함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만족스러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는 길, ‘기운’이라는 이름처럼 정말 기운이 솟아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과 친절한 서비스, 그리고 아늑한 분위기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곳이었다. 강남역 인근에서 삼겹살 맛집을 찾는다면, 자신 있게 ‘기운’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뼈에 붙어 있는 삼겹살을 숙성시켜 숯불에 구워 먹는 갈비삼겹은 꼭 한번 맛보시길 바란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이다. 다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방문해서 ‘술기운세트’에 도전해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