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춘천 노포, 실비막국수에서 맛보는 막국수와 수육의 향수

춘천으로 향하는 길, 창밖 풍경은 어느덧 짙푸른 녹음으로 가득했다. 습도를 머금은 공기가 끈적하게 달라붙는 날씨. 이럴 땐 시원한 막국수 한 그릇이 절실해진다. 춘천에는 유서 깊은 막국수 맛집들이 즐비하지만, 오늘 나의 발길을 잡아끈 곳은 50년 전통의 3대째 이어오는 노포, 실비막국수였다. 좁다란 골목길 안쪽에 숨어있는 듯 자리한 이곳은, 춘천 사람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춘천 맛집이라고 했다.

오픈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가게 앞에는 몇몇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과, 정겹게 느껴지는 나무 창틀 너머로 언뜻 보이는 가게 안 풍경은, 마치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놀러 온 듯한 푸근함을 안겨주었다. 문이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 손님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안으로 들어섰다.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가에 붙은 스티커
세월이 느껴지는 창문과 “선한영향력 가게” 스티커

내부는 생각보다 아담했다. 테이블 몇 개가 놓인 공간은, 왁자지껄한 손님들의 이야기 소리로 가득 찼다. 벽 한쪽에는 오래된 사진들과 낙서들이 빼곡하게 붙어있었는데,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담겨있는 듯했다.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메뉴는 단출했다. 막국수와 수육, 빈대떡, 그리고 만둣국. 고민할 것도 없이, 이곳의 대표 메뉴인 2대 막국수와 수육(중)을 주문했다. 잠시 후, 테이블 위로 정갈하게 담긴 음식들이 하나둘씩 놓이기 시작했다.

수육과 막국수 한상차림
소박하지만 정갈한 한 상 차림

먼저 막국수.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나온 막국수는, 소담하게 담긴 면 위로 붉은 양념장이 듬뿍 올려져 있었다. 그 위에는 김 가루와 깨가 솔솔 뿌려져 있어,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자랑했다. 뽀얀 빛깔의 삶은 계란 반쪽이 앙증맞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젓가락으로 면을 휘휘 저어 양념과 고루 섞었다. 면은 갓 뽑아낸 듯, 탄력이 느껴졌다. 코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향은 없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참기름 향과,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 양념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드디어, 기대하던 첫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입안 가득 퍼지는 메밀의 향긋함. 툭툭 끊어지는 듯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는 면발의 식감이 일품이었다. 양념은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한 단맛과 매콤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과하지 않은 양념은 메밀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막국수 클로즈업
양념과 김가루, 깨가 듬뿍 뿌려진 막국수

테이블 한쪽에는 막국수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비빈 후, 식초와 설탕, 겨자를 기호에 맞게 넣어 먹으라는 것이었다. 설명대로 육수를 살짝 부어 맛을 보았다. 슴슴한 듯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 육수는, 막국수의 풍미를 한층 더 끌어올려 주는 듯했다.

이번에는 식초와 설탕을 약간 넣어 맛을 보았다. 새콤달콤한 맛이 더해지니,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톡 쏘는 겨자 향까지 더해지니, 입안이 더욱 즐거워지는 듯했다. 취향에 따라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실비막국수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싶다.

함께 나온 백김치와 상추 무침은, 막국수와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했다. 아삭하면서도 시원한 백김치는, 매콤한 막국수의 맛을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갓 무쳐낸 듯 신선한 상추 무침은, 향긋한 풀 내음으로 입안을 가득 채워주었다.

곁들임 반찬
막국수와 곁들여 먹기 좋은 백김치와 상추무침

다음은 수육.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수육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져 접시에 담겨 나왔다. 얇게 썰린 수육은,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니 야들야들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깻잎지와 무 절임채, 그리고 새우젓이 함께 제공되었다.

수육 한 점을 집어 새우젓에 살짝 찍어 맛을 보았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듯 부드러운 식감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돼지 특유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특히, 강황을 넣어 삶았다는 수육은, 은은한 향신료 향이 더해져 풍미를 더했다.

윤기가 흐르는 수육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먹음직스러운 수육

수육을 깻잎지에 싸서 먹으니, 또 다른 별미였다. 짭짤하면서도 향긋한 깻잎 향이, 수육의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입맛을 돋우었다. 아삭한 무 절임채와 함께 먹으니, 씹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막국수와 수육을 번갈아 가며 먹으니, 어느새 그릇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과식을 자제하려 했지만, 젓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의 막국수와, 부드러운 수육의 조화는, 정말 훌륭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는 길, 왠지 모를 아쉬움이 밀려왔다. 좀 더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비막국수는 단순한 식당이 아닌, 춘천 사람들의 추억과 향수가 담겨있는 공간이었다.

막국수 비빔 전
양념과 면이 잘 어우러진 막국수

다음에 춘천에 방문하게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빈대떡과 만둣국도 함께 맛봐야겠다. 그리고, 70년대 감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곳에서,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춘천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다.

실비막국수는 화려하거나 세련된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 그리고 푸근한 분위기는,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실비막국수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춘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춘천의 숨은 맛집, 실비막국수에 방문하여,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총점: 5/5

장점:

*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의 막국수
* 부드럽고 잡내 없는 수육
* 푸근하고 정겨운 분위기
* 친절한 서비스

단점:

* 주차 공간이 협소함
* 웨이팅이 있을 수 있음

추천 메뉴: 2대 막국수, 수육

수육과 깻잎
수육과 깻잎지의 조화
양념이 올려진 막국수
참깨가 듬뿍 뿌려진 막국수
막국수 확대
육수를 부어 촉촉해진 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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