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찾아온 점심시간. 뭘 먹을까 고민하며 포항의 거리를 걷다가, 문득 해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끈한 국물에 면 한 젓가락이면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발걸음 닿는 대로 걷다 영일대 해변 근처에 아기자기한 외관의 식당을 발견했다. ‘포항홍게칼국수’라는 상호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이곳이라면 내가 찾던 그 맛,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문 앞에는 원목 소재의 입간판이 놓여 있었고, 가게 안을 엿볼 수 있는 동그란 창 너머로 나무로 된 파티션이 시선을 끌었다. 마치 브런치 카페에 온 듯한 세련되면서도 따뜻한 인테리어였다. 솔직히 처음엔 ‘이렇게 예쁜 곳에서 칼국수를 판다고?’ 싶었지만, 이미 내 안의 ‘혼밥 레벨’을 올릴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12석 남짓한 아담한 공간이라는 사전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들어서니 그 아늑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북적이는 곳보다는 이렇게 조용하고 집중된 분위기가 혼자 식사하기에 더 편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왠지 이곳이라면 맘 편히 나만의 시간을 즐기며 맛있는 음식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메뉴판을 보니 메뉴는 단 두 가지, ‘홍게칼국수’와 ‘홍게비빔칼국수’.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하나씩 주문했다. 혼자 왔지만, 그래도 역시 이 두 가지 맛을 모두 경험하고 싶었기에… 굳이 나누어 먹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먼저 나온 것은 홍게칼국수. 뽀얀 국물이 보기만 해도 속이 풀릴 것 같았다. 그릇 안에는 쫄깃해 보이는 칼국수 면과 함께, 부드러운 홍게 살이 듬뿍 올라가 있었다. 그 위에 얹어진 푸릇한 채소와 반숙 계란, 그리고 톡톡 터질 듯한 식감을 자랑하는 날치알까지. 비주얼만으로도 이미 합격점을 주고 싶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물을 한 숟갈 떠먹는 순간, ‘아, 이건 그냥 칼국수가 아니구나’ 싶었다. 홍게를 볶아내 깊은 풍미를 우려낸 듯한 진하고 시원한 국물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단순히 해물을 넣고 끓인 맛이 아니라, 입안 가득 퍼지는 감칠맛과 은은한 홍게의 향이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브런치 레스토랑의 파스타처럼, 혹은 해장 라멘처럼, 깊고 진한 육수의 맛이었다.

면은 또 어떻고. 매일 직접 뽑는다는 면은 탱글하면서도 적당히 쫄깃한 식감이 살아 있었다. 푹 익혀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씹는 맛이 확실했다. 뜨거운 국물과 면의 조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후루룩, 후루룩. 나도 모르게 면치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홍게 비빔칼국수를 드시고 계셨는데, 문득 궁금해져서 나도 추가 주문할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곧 내가 주문한 홍게칼국수와 함께 나오는 밥이 떠올랐다. 라멘집에서 나오는 밥처럼,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또 다른 별미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밥이 나왔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을 국물에 말아 먹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든든한 한 끼 식사는 없을 것이다. 홍게의 깊은 풍미가 밥알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마치 진한 홍게죽을 먹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양도 푸짐해서 혼자 왔지만 전혀 부족함 없이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이윽고 홍게 비빔칼국수가 등장했다. 처음 눈으로 느꼈던 그 비주얼 그대로였다. 빨갛게 양념된 면 위로 눈꽃처럼 쌓인 홍게살, 부드러운 수육, 그리고 먹음직스럽게 반으로 잘린 반숙 계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특히 홍게살의 풍성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면과 고명을 쓱쓱 비벼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었다. 매콤하면서도 홍게의 고소함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맛이었다. 홍게 오일 특유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지면서, 쫄깃한 면발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맵기 조절도 가능한지 맵지 않고 딱 맛있게 매콤한 정도여서 좋았다. 씹히는 홍게살의 달큰함과 수육의 부드러움, 그리고 아삭한 채소의 식감까지. 이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한 번 맛보면 멈추기 힘든 매력적인 맛이었다.
특히 듬뿍 올라간 홍게살은 마치 게살 페이스트처럼 부드럽고 진한 맛을 선사했다. 그냥 게살만 따로 먹어도 맛있고, 비벼 먹어도 역시나 최고였다. 왜 게살 추가를 추천하는지 알 수 있는 맛이었다. 다음에는 비빔칼국수에 게살을 추가해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곁들여진 반숙 계란을 톡 터뜨려 노른자를 비빔 칼국수와 함께 비벼 먹으니, 부드러움이 더해져 더욱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하루 50그릇 한정으로 판매한다고 하니,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기다림이 조금 있었지만, 맛을 보니 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가격대가 일반 칼국수집보다는 조금 높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정도의 퀄리티와 맛이라면 여행길에 특별한 한 끼로 충분히 그 가치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사장님의 친절함이 인상 깊었다. 가게 규모는 작지만, 그만큼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신경 써주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혼자 방문했음에도 전혀 눈치 보이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마치 오랜 단골집에 온 것처럼 푸근한 기분이 들었다.
포항 여행 중에 우연히 들렀지만, 이곳에서의 식사는 짧은 여행에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더해주었다. 다음에 포항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망설임 없이 다시 찾을 것 같다. 혼자 와도, 혹은 누구와 함께 와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는, 분명 ‘또 올 거야’ 리스트에 저장될 만한 곳이었다. 오늘도 혼밥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