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저녁, 퇴근길 발걸음은 어김없이 사당역으로 향했다. 며칠 전부터 귓가에 맴돌던 빗소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눅눅한 날씨에 괜스레 센티해진 기분 탓이었을까. 뜨끈한 전과 막걸리 한 잔이 간절했다. 사당역 10번 출구에서 300미터, 오래된 친구처럼 익숙한 ‘전주전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판에는 1999년부터 이 자리를 지켜왔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을까. 은은한 조명이 감싸는 가게 앞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하부터 2층까지, 꽤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역시, 비 오는 날의 전집은 진리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갔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기름 냄새가 섞여 후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했다. 마치 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오히려 정겹게 느껴졌다. 젊은이들부터 어르신, 심지어 외국인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펼쳤다. 암행어사, 변사또, 이몽룡, 춘향… 재미있는 이름의 세트 메뉴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언제나 ‘대표선수’, 바로 모듬전과 김치찌개 세트였다. 20여 가지의 다양한 전 종류와 35가지에 달하는 막걸리 리스트는 언제나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한다. 오늘은 어떤 막걸리를 마셔볼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직원분이 능숙하게 막걸리를 추천해 주셨다.

잠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모듬전이 등장했다. 커다란 대나무 채반에 푸짐하게 담긴 전들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동그랑땡, 두부전, 버섯전, 깻잎전, 호박전, 동태전… 알록달록한 색감과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은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큼지막한 왕동그랑땡은 단연 돋보였다.
젓가락을 들어 가장 먼저 동그랑땡을 집어 들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완벽한 겉바속촉이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육즙과 고소한 풍미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셨던 바로 그 맛이었다. 두부전은 부드러웠고, 버섯전은 쫄깃했다. 깻잎전은 향긋했고, 호박전은 달콤했다. 동태전은 담백했다. 쉴 새 없이 젓가락을 움직이며 다양한 전들을 맛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전만 먹다 보니 살짝 느끼함이 느껴질 때쯤, 김치찌개가 등장했다.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는 보기만 해도 침샘을 자극했다. 칼칼하고 매콤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국물을 한 입 떠먹으니, 진하고 깊은 맛이 온몸을 감쌌다. 김치의 시원함과 돼지고기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환상의 조합을 이루었다. 김치찌개는 전의 느끼함을 완벽하게 잡아주었다.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다. 부드럽고 달콤한 막걸리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전의 고소함, 김치찌개의 칼칼함, 그리고 막걸리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완벽한 삼박자를 이루었다. 비 오는 날, 전집에서 즐기는 막걸리는 그 어떤 술보다 맛있었다.
이야기가 무르익어갈수록, 테이블 위는 점점 푸짐해졌다. 모듬전과 김치찌개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새로운 막걸리 병들이 테이블 한 켠을 차지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흥겨운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두가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고, 그리고 추억에 취하는 밤이었다.
전주전집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사람들의 추억과 이야기가 쌓이는 공간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는 맛과 푸짐한 인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곳, 힘들고 지칠 때 위로받고 싶은 곳, 바로 전주전집이었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섰다. 배는 빵빵했고, 마음은 따뜻했다. 친절한 직원분들의 환송을 받으며, 다음 방문을 기약했다. 사당역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귓가에는 여전히 빗소리가 맴돌았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다음에는 비 오는 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와야겠다. 맛있는 전과 막걸리를 나누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야겠다. 전주전집은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전주전집 방문 꿀팁:
* 웨이팅 피하기: 금요일 저녁이나 비 오는 날에는 웨이팅이 길 수 있으니,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하거나 8시 이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 지하 계단 주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가파르니, 술에 취했을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 다양한 막걸리: 35가지가 넘는 막걸리 중에서 취향에 맞는 막걸리를 골라 마시는 재미를 느껴보자.
* 모듬전 세트: 푸짐한 양과 다양한 종류의 전을 맛볼 수 있는 모듬전 세트를 추천한다.
* 육전: 부드러운 식감과 풍부한 육즙을 자랑하는 육전은 꼭 먹어봐야 할 메뉴다.
* 김치찌개: 칼칼하고 시원한 김치찌개는 전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최고의 메뉴다.
아쉬운 점:
* 테이블 간 간격이 좁아 다소 시끄러울 수 있다.
* 화장실이 외부에 있고 노후되어 예민한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 공기밥과 음료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전집은 사당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진정한 맛집이다. 푸짐한 양, 훌륭한 맛,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는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오늘 밤, 막걸리 한 잔에 추억을 곁들이고 싶다면 전주전집으로 떠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