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늘 낯선 곳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문득 떠나온 강릉. 푸른 바다와 짭짤한 바람이 전부일 줄 알았던 이 곳에서, 뜻밖의 프랑스 가정식을 만났다. 썸머키친, 이름부터가 여름날의 싱그러움을 가득 담은 듯한 그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가게 앞에 다다르자, 마치 비밀 정원 입구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담벼락을 타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수국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파스텔톤의 꽃잎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낡은 듯 정감 있는 나무 간판에는 분필로 삐뚤빼뚤 적힌 메뉴들이, 이곳의 소박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짐작하게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각을 자극하는 고소한 버터 향과 은은한 나무 향이 섞여 묘한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앤티크 가구들과 따뜻한 색감의 조명이 어우러진 공간은, 마치 프랑스 어느 작은 마을의 가정집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벽돌로 쌓아 올린 벽에는 손으로 그린 듯한 그림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걸려 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엉트르꼬뜨 스테이크, 파스타 마르세유, 오리 콩피…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프랑스 요리들이 가득했다. 고민 끝에 나는 이곳의 대표 메뉴라는 어니언 스프와, 싱싱한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오일 파스타를 주문했다. 왠지 오늘은, 향긋한 화이트 와인도 한 잔 곁들이고 싶었다.
주문 후, 식당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테이블마다 놓인 작은 꽃병에는 싱그러운 꽃들이 꽂혀 있었고, 벽 한쪽에는 책들이 가득 꽂힌 책장이 있었다. 햇살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잠시 후, 식전 빵이 나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바게트를 따뜻하게 데워, 부드러운 버터와 함께 내어주었다. 빵을 한 입 베어 무니, 고소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빵만으로도 이곳의 음식 솜씨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니언 스프가 드디어 나왔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뚝배기 안에는, 진한 갈색의 스프가 가득 담겨 있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빵과 녹아내린 치즈가 스프 위에 덮여 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스프를 한 입 맛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깊고 진한 육수의 풍미와 달콤하게 볶아진 양파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빵과 치즈를 함께 떠먹으니,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뜨끈한 스프가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느낌이, 마치 엄마가 끓여준 곰탕처럼 포근했다.
어니언 스프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오일 파스타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큼지막한 새우와 홍합, 신선한 채소들이 면 위에 듬뿍 올려져 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식욕을 자극했다. 올리브 오일 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가는 것이, 정말이지 황홀했다.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아 한 입 맛보았다. 탱글탱글한 면발과 신선한 해산물의 조화가 훌륭했다. 특히, 큼지막한 새우는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식감이 일품이었다. 느끼하지 않고 깔끔한 맛이, 어니언 스프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파스타를 먹는 중간중간, 화이트 와인을 홀짝였다. 은은한 산미와 향긋한 과일 향이 입안을 깔끔하게 정돈해 주어, 음식의 풍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따스한 햇살,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와인. 이보다 더 완벽한 순간이 있을까.
식사를 마치고, 2층에 있는 소품샵에 들렀다. 아기자기한 엽서와 액세서리, 향긋한 향초들이 가득한 공간은, 마치 보물창고 같았다.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음에 드는 엽서 몇 장과 향초를 고르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계산대 옆에는 크림 브륄레가 놓여 있었다.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하나를 주문했다. 얇고 바삭한 설탕 막을 깨뜨려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과 함께 먹으니,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달콤한 맛이 기분까지 좋게 만들어 주었다.

썸머키친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한 끼 식사를 넘어 특별한 경험이었다. 따뜻한 분위기, 친절한 서비스, 그리고 무엇보다 훌륭한 음식 맛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강릉에 다시 온다면, 썸머키친은 반드시 다시 방문해야 할 맛집이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이 아름다웠다. 썸머키친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따뜻해진 기분이었다. 강릉에서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아름답게 저물어갔다.
돌아오는 길, 나는 썸머키친에서의 기억을 곱씹었다. 어니언 스프의 깊은 풍미, 오일 파스타의 신선함, 그리고 크림 브륄레의 달콤함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곳은, 내게 단순한 강릉 맛집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곳은 마치, 낯선 곳에서 만난 따뜻한 위로와 같았다. 다음에 또 강릉에 오게 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썸머키친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곳에서, 또 어떤 새로운 맛과 추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