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저녁, 숙대입구역 6번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늘 드디어 그 유명한 ‘남영돈’에 발을 들여놓는 날. 1982년부터 이 자리에서 2대째 이어오고 있다는 이야기에, 단순한 식사를 넘어선 어떤 역사적인 경험을 하러 가는 기분마저 들었다. 웨이팅 지옥이라는 악명에도 불구하고, 평소 돼지고기 마니아를 자처하는 내가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이미 각오는 했지만, 역시나 기다림은 피할 수 없었다. 평일 4시 30분쯤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앞으로 대기팀이 즐비했다. 캐치테이블에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고, 예상 대기 시간을 확인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괜찮다. 이 기다림 끝에 맛볼 천상의 돼지고기를 생각하며 인내심을 발휘하기로 했다. 주변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내 순서가 다가왔다. 1시간 30분 만에 드디어 입성이라니! 마치 오랜 염원을 이룬 듯한 기분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생각보다 넓은 공간에 놀랐다. 테이블 간 간격은 넉넉했고, 환풍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쾌적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곧 닥쳐올 연기와의 전쟁은 상상도 못한 채 말이다. 메뉴판을 펼쳐 들고, 어떤 부위를 먹어볼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남영돈에 왔으니, 대표 메뉴인 항정살과 가브리살을 빼놓을 수 없지. 삼겹살과 목살도 궁금했지만, 일단 오늘은 이 두 부위에 집중하기로 했다.
주문을 마치자, 곧 밑반찬들이 테이블 위를 가득 채웠다. 묵은지 김치찌개, 백김치, 파김치, 갓김치, 쌈무, 깻잎 장아찌 등등… 하나하나 정갈하게 담겨 나온 모습에 감탄했다. 특히 묵은지 김치찌개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비주얼이었다. 얼큰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 국물은, 고기를 먹기 전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숯불이 등장했다. 겉은 검게 그을렸지만 속은 붉게 타오르는 숯을 보니, 고기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남영돈의 숯은 화력이 좋기로 유명한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돼지고기를 만들어내는 비결이라고 한다. 불판이 숯불 바로 위에 놓이는 구조라, 열기가 엄청났다.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숯불의 열기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여름에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
잠시 후, 큼지막한 항정살과 가브리살이 검은 접시에 담겨 나왔다. 선홍빛을 띠는 고기의 자태는, 그 신선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두툼하게 썰어낸 고기 표면에는 칼집이 촘촘하게 들어가 있어, 굽는 동안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 모습이었다.

남영돈에서는 직원분들이 직접 고기를 구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숙련된 솜씨로 고기를 불판 위에 올리고, 능숙하게 뒤집고 자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고기가 타지 않도록 끊임없이 불판을 닦아주고, 숯불의 화력을 체크하며 숯을 추가하는 모습에서, 프로페셔널함이 느껴졌다.
어느덧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항정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완벽한 비주얼이었다. 직원분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첫 점은 소금에 찍어 먹어보라고 권했다. 망설임 없이 항정살 한 점을 집어 소금을 살짝 찍어 입에 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부드러운 식감과, 풍부한 육즙. 이것이 바로 남영돈 항정살의 위엄인가!
항정살은 정말이지 ‘인생 항정살’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느끼함은 전혀 없고, 고소함과 담백함이 입 안 가득 퍼져나갔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은, 지금껏 먹어본 항정살과는 차원이 달랐다. 왜 사람들이 남영돈 항정살에 열광하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은 가브리살 차례. 가브리살 역시 숯불 위에서 맛있게 익어갔다. 항정살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가브리살은,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이 터져 나왔고, 은은한 숯 향이 풍미를 더했다. 가브리살은 젓갈과 함께 먹으니, 그 맛이 더욱 살아났다. 짭짤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젓갈이, 가브리살의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풍미를 더욱 끌어올렸다.

고기를 먹는 중간중간, 밑반찬들을 곁들여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잘 익은 파김치는, 돼지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데 제격이었다. 아삭하면서도 매콤한 파김치의 풍미는, 돼지고기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백김치 역시 시원하고 깔끔한 맛으로 입 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주었다.
사이드 메뉴로 주문한 비빔쫄면도 빼놓을 수 없다. 남영돈의 비빔쫄면은, 쫄깃한 면발과 매콤달콤한 양념의 조화가 훌륭했다. 특히 고기와 함께 먹으니, 그 맛이 배가되었다. 뜨겁고 기름진 고기를 먹다가, 시원하고 매콤한 쫄면을 먹으니 입 안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다만, 비빔쫄면 양념이 조금 달다는 의견도 있었다. 단맛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주문 전에 미리 덜 달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연기가 자욱하다는 것이다. 숯불 화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 연기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환풍 시설이 잘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완전히 잡아내지는 못하는 듯했다. 눈이 매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옷에 냄새가 배는 것은 감수해야 했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직원분들의 서비스 퀄리티가 약간씩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직원분은 고기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게 해주고, 맛있게 먹는 방법도 친절하게 알려주는 반면, 어떤 직원분은 묵묵히 고기만 구워주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모든 직원분들이 친절했지만, 서비스 편차가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을 모두 잊게 할 만큼, 남영돈의 돼지고기는 훌륭했다. 특히 항정살과 가브리살은, 지금껏 먹어본 돼지고기 중 단연 최고였다. 숯불 향이 은은하게 배어있는 고기는, 입 안에서 살살 녹아내리는 듯했다. 밑반찬들도 하나하나 정갈하고 맛있었고, 김치찌개는 깊고 진한 맛이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는 길, 3시간에 가까운 웨이팅을 해야 한다면 다시 올지는 망설여질 것 같다. 하지만 대기가 없다면, 언제든 다시 방문하고 싶다. 그만큼 남영돈의 돼지고기는 훌륭했다. 특히 항정살은,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맛봐야 할 메뉴다.
남영돈은 단순한 고깃집이 아닌,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숙대입구역의 명물이었다. 숯불 향 가득한 돼지고기와, 푸짐한 밑반찬,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음에는 꼭 삼겹살과 목살, 후추 떡볶이까지 섭렵해봐야겠다. 그날을 기약하며, 남영돈 맛집 탐방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