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5가역 3번 출구를 나서 두어 걸음. 낡은 건물들 사이로 묘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붉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효제루’. 그래, 바로 이 곳이었다. 한때 합정에서 이름을 날렸던 플로리다반점의 셰프가 다시 칼을 잡았다는 소식을 접한 건 꽤 오래전이었지만,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했던 탓에 이제야 발걸음을 향하게 된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생각보다 아담한 공간이 정겹게 다가왔다.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자칫 좁게 느껴질 수도 있는 공간이었지만 창가 자리가 있어 혼밥을 즐기기에도 부담 없을 듯했다. 벽 한쪽을 가득 채운 기념품들은 마치 오래된 친구의 작업실에 놀러 온 듯한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잉위 맘스틴과 메탈리카 포스터가 나란히 붙어있는 중식당이라니.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묘하게 이곳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듯했다.
평일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역시나, 입구에는 대기자 명단이 놓여 있었다. 이름과 메뉴를 적고 기다리라는 안내를 받고 잠시 서성이니, 15분쯤 지나 내 차례가 왔다. 마지막 테이블에 겨우 앉을 수 있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다. 메뉴판은 단출했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동네 흔한 중국집처럼 이것저것 다 갖다 놓는 대신, 몇 가지 자신 있는 메뉴에 집중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더욱 신뢰감을 주었다. 짜장면(7,000원)과 탕수육(소, 22,000원)을 주문했다. 혼자였지만, 탕수육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짜장면이었다. 짙은 갈색의 윤기가 흐르는 짜장 소스가 면 위에 듬뿍 얹어져 나왔다.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니, 꾸덕꾸덕한 소스가 면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전해졌다. 한 입 맛보니, 과연,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의 짜장면이었다. 좌글좌글 볶아낸 춘장의 깊은 풍미가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요즘 흔한 짜장면처럼 지나치게 달거나 느끼하지 않고,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유니짜장 스타일로 잘게 다진 고기가 씹는 맛을 더했지만, 조금 더 큼지막한 고기가 들어갔으면 하는 아쉬움도 살짝 남았다. 하지만 단무지 한 조각 곁들이니, 그 아쉬움마저 싹 사라졌다. 짜장 소스는 마치 벨벳처럼 부드러웠고, 면은 탱글탱글 살아 있었다. 이 완벽한 조화라니!

곧이어 탕수육이 나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이른바 ‘겉바속촉’의 정석을 보여주는 탕수육이었다. 튀김옷은 얇고, 돼지고기는 큼지막했다. “나는 고기다!” 라고 외치는 듯 큼직한 고기가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주었다. 탕수육 소스는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강했는데, 묘하게 초콜릿 향이 느껴지는 듯했다. 소스에 바나나가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정말 그런 걸까? 볶먹 스타일로 소스가 부어져 나왔지만, 눅눅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한 입 베어 무니, 바삭한 튀김옷과 촉촉한 고기가 입안에서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간장에 찍어 먹지 않아도, 소스 자체의 단짠 밸런스가 훌륭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탕수육 고기가 조금 퍽퍽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치아가 약한 나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탕수육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탕수육의 양도 꽤 푸짐해서, 혼자 먹기에는 조금 많았다. 둘이 와서 나눠 먹기에 딱 좋을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탕수육 ‘소’자 하나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혼자 방문했기에 다른 메뉴를 맛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짬뽕을 시킬까 잠시 고민했지만, 짜장면과 탕수육만으로도 충분히 배가 불렀다. 옆 테이블에서 맛있게 먹는 볶음밥을 보니, 다음에는 꼭 볶음밥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짬뽕은 이 집의 숨겨진 강자라는 평이 많아서 더욱 궁금했다.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에 신선한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짬뽕이라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팔보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신선한 해산물과 채소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짭조름하게 볶아낸 팔보채는 술안주로도, 식사로도 훌륭할 것 같았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주인분께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건넸다. 친절한 미소로 답해주시는 모습에, 다시 한번 이곳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제루는 동네 흔한 중국집처럼 다양한 메뉴를 갖춘 곳은 아니지만, 짜장면, 탕수육, 짬뽕 등 몇 가지 대표 메뉴에 집중하여 최고의 맛을 선사하는 곳이었다. 마치 오랜 친구 집에 놀러 온 듯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최근 성시경의 ‘먹을텐데’에 소개된 이후로 더욱 인기가 많아졌다고 하니, 조만간 다시 방문하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맛있는 짬뽕과 볶음밥, 그리고 군만두를 맛보기 위해서라면, 웨이팅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예전에 즐겨 찾던 동네 중국집이 떠올랐다. 값싸고 푸짐한 짜장면 한 그릇에, 넉넉한 인심까지 더해져 늘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나오곤 했다. 효제루는 그런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분위기의 맛집이었다. 화려하거나 세련된 맛은 아니지만,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개성이 느껴지는 맛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다음에는 꼭 친구와 함께 방문해야겠다. 탕수육 ‘소’자를 시켜놓고, 짜장면과 짬뽕을 나눠 먹으면서, 맥주 한 잔 기울이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아, 평일 점심에만 판매한다는 군만두도 꼭 먹어봐야지. 8개에 6천 원이라는 착한 가격도 놀랍지만, 속이 꽉 찬 제대로 만든 군만두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효제루는 종로5가, 그 낡은 골목길 한 켠에서, 추억과 맛을 함께 볶아내는 곳이었다. 세련된 감각은 아닐지라도, 진심이 담긴 맛은 그 어떤 화려함보다 강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총평:
* 맛: 짜장면, 탕수육 모두 훌륭하다. 특히 짜장면은 과하지 않은 단맛과 춘장의 풍미가 일품이다. 탕수육은 겉바속촉의 정석을 보여주지만, 고기가 조금 퍽퍽한 점은 아쉽다. 짬뽕, 볶음밥, 군만두 등 다른 메뉴도 기대된다.
* 가격: 짜장면 7,000원, 탕수육(소) 22,000원.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다. 특히 탕수육은 양이 푸짐해서 둘이 먹기에 충분하다.
* 분위기: 아담하고 정겨운 분위기. 혼밥 하기에도 부담 없다. 벽에 붙은 기념품들이 인상적이다.
* 서비스: 친절하다. 짬뽕을 주문하면 두 그릇으로 나눠주는 센스가 돋보인다.
* 재방문 의사: 매우 높음. 다음에는 친구와 함께 방문하여 다양한 메뉴를 맛보고 싶다.
팁:
* 평일 저녁 시간에는 웨이팅이 있을 수 있으니, 7시 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 혼밥보다는 둘이 방문하는 것이 좋다. 탕수육 ‘소’자 하나만 시켜도 충분할 수 있다.
* 평일 점심에만 판매하는 군만두는 꼭 먹어보자.
* 콜키지는 병당 1만원이지만 1병은 무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