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억 속, 낡은 흑백 사진처럼 희미하지만 따뜻하게 남아있는 맛이 있다. 굳이 애써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문득 생각나는, 마치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먹는 듯한 편안한 맛. 울산 젊음의거리,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궁중삼계탕에서 그 잊고 지냈던 맛의 기억을 다시금 마주할 수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겨울의 초입, 따뜻한 국물이 간절해질 때쯤이었다. 평소 삼계탕을 즐겨 먹는 편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이끌려 궁중삼계탕의 문을 열었다. 1975년부터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가 무색하지 않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외관이 정겹다. 은은한 조명이 따스하게 비추는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듯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둘러봤다. 삼계탕, 옻닭, 전복죽 등 다양한 메뉴가 있었지만, 역시 가장 기본인 삼계탕을 주문했다. 잠시 후, 정갈하게 차려진 밑반찬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깍두기, 새콤달콤한 오이무침, 아삭한 오이고추까지,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지는 맛깔스러운 반찬들이었다. 특히 깍두기는 적당히 익어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 일품이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삼계탕이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는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뽀얀 국물 위로 송송 썰린 파가 얹어져 있고, 그 아래로 뽀얀 닭의 자태가 드러났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입 떠 맛보니, 깊고 진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닭 특유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돋보였다.
젓가락으로 닭을 살짝 들어보니, 푹 고아져 살이 부드럽게 찢어졌다. 닭가슴살은 퍽퍽하지 않고 촉촉했으며, 닭다리 살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닭 안에는 찹쌀, 인삼, 대추, 밤 등이 푸짐하게 들어있어, 든든한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었다. 특히 녹두가 들어가 찹쌀의 고소함이 더욱 깊게 느껴졌다.

삼계탕을 먹는 중간중간, 깍두기와 오이무침을 곁들여 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특히 아삭한 오이고추는 삼계탕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함께 제공되는 인삼주를 살짝 곁들이니, 은은한 인삼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궁중삼계탕에서는 닭똥집 볶음도 맛볼 수 있다는 사실! 쫄깃쫄깃한 닭똥집을 매콤하게 볶아낸 닭똥집 볶음은, 삼계탕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함께 나오는 양파와 곁들여 먹으니, 닭똥집의 쫄깃함과 양파의 아삭함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자랑했다.
어느새 뚝배기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따뜻한 물로 입가심을 했다. 몸 속 깊은 곳부터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하자, 푸근한 인상의 사장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1975년부터 이곳에서 삼계탕집을 운영해오셨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궁중삼계탕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궁중삼계탕은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울산 중구의 역사와 함께 해온 공간이었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함없는 맛과 따뜻한 정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곳. 그곳에서는 맛있는 음식과 함께, 잊고 지냈던 따뜻한 추억까지 되살아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뜨끈한 삼계탕 한 그릇에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나니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특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나 몸이 으슬으슬 춥게 느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생각날 것 같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함께 몸보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게 문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 문득 어린 시절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삼계탕이 떠올랐다. 뭉근하게 끓여 뽀얀 국물에 닭고기를 찢어 찹쌀과 함께 입에 넣어주시던 따뜻한 손길. 궁중삼계탕에서 맛본 삼계탕은, 마치 할머니의 손맛처럼 정겹고 따뜻했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을 넘어, 마음까지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음식. 그것이 바로 궁중삼계탕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 아닐까.
젊음의거리 인근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노포답게, 궁중삼계탕은 편안하고 푸근한 분위기 속에서 맛있는 삼계탕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한결같은 맛과 푸짐한 인심은 물론, 친절한 서비스까지 더해져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특히 닭 크기는 보통이지만 찹쌀 양이 많고 녹두가 섞여 고소한 맛을 더하는 삼계탕은, 기력이 약해질 때 생각나는 든든한 보양식으로 제격이었다.
따뜻한 국물에 몸을 녹이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싶을 때, 혹은 잊고 지냈던 따뜻한 추억을 되살리고 싶을 때, 울산 중구 젊음의거리에 위치한 궁중삼계탕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는 맛과 따뜻한 정으로 당신을 맞이해줄 것이다.
참, 궁중삼계탕은 태화강 뷰를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식사 후 태화강변을 따라 산책을 즐기며 소화를 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또한, 시장 구경을 하고 방문하기에도 좋은 위치에 있어, 울산 여행 중 들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따뜻했던 궁중삼계탕에서의 기억을 곱씹으며, 다음에는 꼭 부모님과 함께 방문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오랜 시간 변함없는 맛을 지켜온 궁중삼계탕처럼, 나 또한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