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미식가의 심정이란, 때로는 낯선 길 위에서 문득 깨어나는 법이다. 2015년 5월 13일, 나는 푸른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는 장수군 계남면의 자그마한 마을 어귀에 서 있었다. 산림청이 선정한 100명산 중 하나인 장안산의 들머리, 무령고개까지는 이제 막 20분 남짓 남았지만, 귓가에 맴도는 ‘고로~~ 고로~~’의 읊조림처럼 허기가 나를 붙잡았다. 꽉 막힌 고속도로를 벗어나 통영대전고속도로를 달리다 장수IC에서 빠져나온 여정은, 이 작은 마을이 품고 있는 어떤 풍경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동네 어르신께 슬쩍 식사할 만한 곳을 여쭙자, 마치 오래된 보물지도를 펼쳐 보이듯 친절하게 세 곳을 알려주신다. 보신탕과 육개장은 ‘전성집’, 정갈한 돌솥비빔밥은 ‘시골쌀밥집’, 그리고 푸짐한 백반은 ‘한정회관’이라. 그중에서도 특히 ‘한정회관’이라는 이름이 귓가에 맴돌았다. 자매처럼 보이는 두 분의 여사장님이 홀과 주방을 오가며 음식을 만들어내는 풍경을 상상하니, 이 길고 긴 여정의 끝에 어떤 따스한 온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렜다.

계남우체국 옆, 눈에 띄는 빨간 간판을 단 ‘한정회관’의 첫인상은 소박하면서도 정겨웠다. 예상대로, 곱게 단장한 듯 아름다운 두 분의 여사장님이 분주히 움직이고 계셨다. 그분들의 고운 미모만큼이나, 가게 안에서는 따뜻하고 정겨운 기운이 흘러넘쳤다. 6천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백반 한 상이 차려진다는 말에, 팍팍한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이 절로 녹아내리는 듯했다. 7천원으로도 한 끼를 제대로 때울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은 요즘, 이곳은 분명 특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한 백반이 상 위에 차려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6천원이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갈하고 푸짐한 한 상이었다. 갓 지은 듯 윤기 나는 밥,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 그리고 제철 나물과 장아찌 등 직접 담근 듯한 손맛 가득한 밑반찬들이 접시마다 정갈하게 담겨 나왔다. 김치찌개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빨간 빛깔을 띠고 있었고, 젓갈 향 은은한 나물 반찬들은 입안 가득 싱그러움을 선사했다. 밥 한 숟갈에 김치찌개의 칼칼함, 그리고 새콤달콤한 나물 반찬을 곁들여 먹으니, 마치 고향집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 앞에 앉은 듯한 포근함이 느껴졌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돼지김치찌개였다. 묵은지를 푹 익혀내 깊고 칼칼한 맛을 낸 국물은, 밥도둑이라 불릴 만했다. 돼지고기 역시 잡내 없이 부드럽게 씹혔고, 숟가락으로 떠먹을 때마다 입안 가득 풍성한 풍미가 퍼져나갔다. 함께 나온 밑반찬들도 하나하나 범상치 않았다. 짭조름하면서도 달큼한 멸치볶음, 향긋한 취나물 무침, 아삭하게 씹히는 콩나물 무침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밥도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사장님께서 직접 담그신다는 반찬들은, 첨가물 없이 신선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내,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이곳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단연코 사장님의 친절함이다. 홀을 책임지는 여사장님은 손님 한 분 한 분에게 살가운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부족한 반찬은 더 가져다주시겠다고 먼저 권하시고, 궁금한 점은 귀찮은 기색 없이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손님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특히 오리주물럭을 주문했던 손님에게 라면사리를 추가해주시던 모습은, 이곳의 훈훈한 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날 나는 백반 외에도 홍어탕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약간 삭힌 홍어 특유의 풍미가 은은하게 퍼지면서, 자꾸만 젓가락이 가는 매력적인 맛이었다. 얼큰한 국물에 미나리, 홍어 살점을 얹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그 조화가 일품이었다. 마치 홍어 마니아들이 왜 홍어에 열광하는지 알 것만 같은 맛이었다. 톡 쏘는 듯하면서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홍어의 식감과, 국물의 깊은 맛이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다. 반찬으로 나온 직접 담근 깻잎 장아찌와 함께 먹으니, 그 풍미가 배가 되는 듯했다.

식사를 마치고 장계 시장으로 향하는 길, 마음속에는 따뜻한 행복감이 가득했다. 장수CC에서 불과 5분 거리라는 지리적 이점도 있지만, 이곳에서 느낀 진심 어린 환대와 정성 가득한 음식은 그 어떤 유명 관광지보다 값진 경험이었다. 깨끗하고 맛깔스러우며, 무엇보다 친절함이 최고였던 곳.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두 번 다시 가고 싶은 식당’이라는 찬사가 절로 나오게 했다.
마을의 작은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한정회관은 단순한 끼니 해결을 넘어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그런 곳이었다. 자매처럼 보이는 두 분의 여사장님이 정성으로 만들어내는 음식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은 없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한 맛과 정겨움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진정한 ‘한 끼의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장수 계남면의 한정회관은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추천할 만한 곳이다. 이곳에서의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따뜻한 사람과 맛있는 음식으로 마음까지 풍요롭게 만드는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