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저녁, 종로의 골목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1977년부터 이 자리에서 묵묵히 설렁탕을 끓여온 노포, 이남장이다. 오래된 맛집은 늘 설렘을 안겨준다. 그곳에는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것을 넘어, 시간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간판에는 50년 전통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외관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나는 듯한 푸근함을 느끼게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와 함께 깊은 육수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테이블은 이미 손님들로 북적였다. 혼자 온 손님, 퇴근 후 동료와 함께 온 손님, 가족 단위 손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벽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설렁탕과 내장탕이 주 메뉴인 듯했다. 고민 끝에,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설렁탕 ‘특’을 주문했다.

주문을 마치자, 테이블 위로 김치와 깍두기가 담긴 접시가 놓였다. 붉은 빛깔의 김치는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커다란 깍두기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 나왔다. 스테인리스로 된 양념통에는 파, 소금, 후추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나는 설렁탕에 넣어 먹을 파를 넉넉하게 덜어놓았다.
잠시 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설렁탕이 눈앞에 나타났다. 뽀얀 국물 위로 큼지막한 양지 한 덩어리가 떡 하니 올려져 있었다. 마치 농구선수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2만원이라는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느껴지는 압도적인 비주얼이었다.

국물부터 한 숟갈 떠 맛보았다. 깊고 묵직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인위적인 조미료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정성껏 끓여낸 육수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깊은 풍미였다. 왜 이 집이 서울 설렁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인지, 국물 한 숟갈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젓가락으로 양지를 들어보니, 그 크기가 다시 한번 실감났다. 얇게 썰린 고기가 아니라, 정말 덩어리째 들어있는 것이었다. 나는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국물에 담갔다. 부드러운 고기는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설렁탕 안에는 소면도 들어 있었다. 뜨끈한 국물에 적셔진 소면은 후루룩 넘어갔다. 밥은 토렴되어 나왔다. 뜨거운 밥알이 차가운 국물 온도를 적당하게 맞춰주어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김치와 깍두기는 설렁탕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삭한 식감과 매콤한 양념은 느끼함을 잡아주고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김치와 깍두기는 같은 양념을 사용해서인지, 맛의 결이 같았다. 1년 내내 큰 기복 없이 비슷한 맛을 유지한다는 점도 놀라웠다. 변치 않는 맛, 이것이 바로 노포의 힘이 아닐까.
식사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 와서 조용히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뜨끈한 설렁탕 한 그릇은 고단한 하루를 위로해주는 따뜻한 선물과 같을 것이다. 나 역시, 오늘 하루의 피로를 설렁탕 한 그릇으로 말끔히 씻어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설렁탕 특에 들어간 고기가 너무 많이 삶아져서 질감이 조금 아쉬웠다. 또한, 고기에서 약간의 냄새가 나는 듯했다. 파와 후추를 듬뿍 넣어 먹으니 냄새가 조금 덜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음에는 내장탕을 한번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며, 다시 한번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고, 추억을 만들어준 곳. 이남장은 단순한 설렁탕집이 아니라, 종로의 역사를 함께해온 소중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자리에서 변치 않는 맛을 지켜주기를 바란다. 다음에 종로에 올 일이 있다면, 꼭 다시 들러 따뜻한 설렁탕 한 그릇을 맛봐야겠다. 그 때는 내장탕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따뜻한 설렁탕 국물 덕분에 몸과 마음이 훈훈해졌다. 종로의 밤거리는 여전히 활기 넘쳤지만, 나는 왠지 모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워주는 것을 넘어,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이남장에서 맛본 설렁탕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