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목적지는 성북동.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붉은 벽돌로 지어진 아담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즐겨 찾았다는,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국시집’이다. 1969년부터 이어져 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외관이었다. 푸른색 차양이 드리워진 창가에는 화려한 꽃들이 만개해, 낡은 건물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주차 공간이 따로 없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역시나 가게 앞은 주차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건물 앞에 두세 대 정도 댈 수 있는 공간이 전부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낡은 나무 계단이 2층으로 이어져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이, 이 집의 깊은 역사를 짐작게 했다. 마침 남자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계셨는데, 환한 얼굴로 맞아주셔서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으니, 테이블마다 플라스틱 번호표 카드가 놓여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 카드를 들고 가서 계산하는 시스템인 듯했다. 메뉴판을 살펴보니, 역시 대표 메뉴는 ‘국시’. 칼국수를 경상도 사투리로 ‘국시’라고 부른다는데, 이 집의 국시는 안동식 국시라고 한다. 그 외에도 수육, 모듬전, 대구전 등 다양한 메뉴들이 눈에 띄었다. 혼자 왔기에 국시만 시킬까 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수육 맛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국시 하나와 수육 작은 사이즈를 주문했다.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갈하게 차려진 한 상이 눈 앞에 놓였다. 뽀얀 국물에 면이 잠겨 있고, 그 위로 애호박과 고기 고명이 살짝 올라간 국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수육은 먹기 좋게 썰어져 나왔다. 그리고 곁들임 찬으로는 묵은 김치와 무생채가 함께 나왔다. 단촐하지만 정갈한, 딱 칼국수와 어울리는 구성이었다.
가장 먼저 국물부터 맛봤다. 뽀얀 곰국물은 보기와는 달리 깔끔하고 담백했다. 꼬릿꼬릿한 사골 육수의 향이 살짝 느껴지면서도, 느끼함 없이 슴슴하게 넘어갔다. 면은 직접 손으로 뽑은 듯, 두께가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인지 획일적인 식감이 아니라,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다채로운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면발은 육수를 가득 머금고 있어, 씹을 때마다 은은한 육향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수육은 겉은 쫄깃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잡내 하나 없이 깔끔하게 삶아져 나왔는데,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할 만한 부드러운 식감이었다. 깻잎이나 부추가 함께 나왔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수육에는 별다른 곁들임 채소가 없었다. 하지만 수육 자체의 맛이 훌륭했기에, 부족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국시와 함께 나온 묵은 김치는, 호불호가 갈릴 듯했다. 푹 익은 묵은지 특유의 시큼한 맛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갓 담근 김치를 선호하지만, 이 집의 묵은 김치는 슴슴한 국시와 의외로 잘 어울렸다. 특히 칼칼한 맛이 느끼함을 잡아주어, 국시를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묵은 김치가 부담스럽다면, 달콤새콤한 무생채와 함께 먹는 것을 추천한다.

식사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나 연령대가 높은 손님들이 많았다. 젊은 층보다는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식사를 즐기시는 모습이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다들 국물까지 남김없이 비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쉬웠던 점은, 가격 대비 양이 조금 적다는 것이었다. 국시 한 그릇에 만 원, 수육 작은 사이즈가 3만 원. 솔직히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특히 양이 많은 남자분들이라면, 곱빼기를 시켜야 만족할 만한 양일 듯했다. 하지만 맛 자체는 훌륭했기에, 가격에 대한 아쉬움을 어느 정도는 달랠 수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면서, 다시 한번 가게 외관을 눈에 담았다. 낡고 허름하지만,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곳이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이 집만의 특별한 매력이 느껴졌다.

다음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국시와 함께 대구전이나 모듬전을 꼭 맛보고 싶다. 특히 사진으로 보니,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대구전의 비주얼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식사가 될 것 같다.
성북동 ‘국시집’.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깔끔하고 담백한 안동식 국시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자극적인 맛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이곳에서 슴슴하고 정갈한 국수 한 그릇으로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숨결이 깃든,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이 곳에서, 특별한 식사 경험을 만들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