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시골 5일장에 가면 솥뚜껑에 지글지글 구워지던 김치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옆에는 어김없이 펄펄 끓는 매운탕 냄비가 있었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국물을 떠먹는 어른들의 모습은 어린 내 눈에도 참 정겨워 보였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탓일까, 언젠가부터 그런 풍경은 잊혀진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 시절의 뜨끈한 매운탕이 그리워졌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제대로 된 민물 매운탕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검색하던 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곳이 있었으니, 바로 화양동에 자리한 “남한강민물매운탕”이었다. 백종원도 인정한 숨은 맛집이라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남한강민물매운탕은 겉모습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과, 낡은 듯 정겨운 외관은 마치 어린 시절 방문했던 시골 식당을 떠올리게 했다. 회색빛 타일 건물, 간판에는 ‘남한강 민물매운탕’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파란색 소주 박스가 가게 앞에 놓여있는 모습은 왠지 모를 친근함을 더했다. 커다란 글씨로 ‘민물 참게 매운탕, 메기 매운탕’이라고 적힌 노란색 배경의 안내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생각보다 아담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간 간격이 좁은 편이라 다소 북적거리는 느낌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정겨운 분위기를 더하는 듯했다. 벽 한쪽에는 메뉴판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는데, 메기, 참게 매운탕을 메인으로 미꾸라지 튀김, 민물새우 튀김 등의 메뉴가 눈에 띄었다. 가격은 메기+참게 매운탕 2인분이 40,000원. 메뉴판 옆에는 연식이 느껴지는 선풍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모님은 능숙한 솜씨로 기본 반찬을 세팅해주셨다. 김치전, 삶은 양배추와 쌈장, 깍두기, 연두부, 동치미 등 푸짐한 구성에,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특히, 슴슴하게 삶아진 양배추에 집된장을 섞은 듯한 고추장을 얹어 먹으니, 입맛이 확 돌았다. 사장님께 여쭤보니, 매운탕 국물에도 이 고추장이 들어간다고 귀띔해주셨다.

고민 끝에, 메기 1인분과 참게 1인분을 섞은 매운탕을 주문했다. 잠시 후, 냄비 가득 끓여진 매운탕이 등장했는데, 비주얼부터가 압도적이었다. 큼지막한 메기 살과 참게, 넉넉하게 들어간 수제비, 그리고 향긋한 미나리가 어우러진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기름이 동동 떠 있는 국물은 보기와는 달리, 진하고 묵직한 느낌이었다.

국물을 한 입 떠먹는 순간, ми душу перевернуло (내 영혼이 뒤집혔다)! 흔히 맛보던 가볍고 시원한 민물 매운탕과는 차원이 다른, 깊고 진한 맛이었다. 된장을 베이스로 한 국물은 구수하면서도 칼칼했고, 메기의 기름기가 더해져 풍부한 풍미를 자랑했다. 특히, 민물새우와 참게가 들어가 시원하면서도 감칠맛이 뛰어났다. 마치, 어릴 적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바로 그 맛이었다.
메기 살은 어찌나 크고 실한지, 젓가락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살점이 후두둑 떨어져 나왔다. 입안에 넣으니,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듯했고, 전혀 비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국물이 졸아들수록, 메기 살에 양념이 깊게 배어 더욱 맛있었다. 참게는 살은 별로 없었지만, 국물에 깊은 맛을 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수제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별미였다. 얇고 쫄깃한 수제비는 넉넉하게 들어있어, 면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특히, 뜨거운 국물에 담가 흐물흐물해진 수제비를 건져 먹는 맛은 정말 최고였다. 옆 테이블에서는 수제비 반죽을 추가해서 직접 뜯어 넣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매운탕을 어느 정도 먹고 나니,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 라면 사리를 추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육수를 조금 더 부어, 라면을 넣고 끓이니, 또 다른 별미가 탄생했다. 꼬들꼬들한 라면에 매콤한 국물이 배어, 정말 멈출 수 없는 맛이었다.
사실, 남한강민물매운탕에 방문하기 전, 미꾸라지 튀김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녁에는 튀김 메뉴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낮에는 가게 밖에 있는 수조에서 미꾸라지를 튀겨 판매하는 듯했다. 튀김을 맛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이모님께서 너무나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다. 계산대 옆에는 백종원의 사인이 걸려 있었는데, 괜히 더 신뢰가 가는 느낌이었다. 나올 때 보니, 이미 가게 앞에는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역시, 화양동 맛집은 맛집인가 보다.

남한강민물매운탕에서 맛본 매운탕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맛이었다. 깊고 진한 국물, 푸짐한 메기 살, 쫄깃한 수제비,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비록, 좁은 공간과 다소 시끄러운 분위기는 아쉬웠지만, 맛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서울 지역명에서 찾은 작은 맛집에서,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고, 든든한 한 끼 식사까지 즐길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꼭 다시 방문해야겠다. 그땐, 꼭 미꾸라지 튀김도 함께 맛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