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퇴근길, 눅눅한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저녁 겸 반주나 기울일까, 하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뒤적였다. 화려한 맛집 광고들 사이로, 묘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곳이 있었다. 허름한 간판 사진 한 장, 그리고 몇 줄의 짧은 후기. ‘숨겨진 맛집’, ‘할머니 손맛’, ‘술맛 나는 집’ 같은 단어들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 오늘은 뻔한 프랜차이즈 대신, 이런 곳에서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게 좋겠다. 그렇게 나는 연수동 골목길, 부원집으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조차 길을 헤매는 좁은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부원집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외관이었다. 낡은 간판에는 희미하게 상호가 적혀 있었고, 빛바랜 나무 двери를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테이블은 고작 여덟 개 남짓, 이미 몇몇 테이블에서는 술잔을 기울이는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정겹고 편안한 느낌이 감돌았다. 마치 오랜 단골집에 온 듯한 기분.
벽에 붙은 메뉴판을 훑어보니, 키조개관자삼합, 아구수육, 생선구이 등 흔치 않은 메뉴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은 건 단연 키조개관자삼합이었다. 신선한 키조개 관자와 표고버섯, 차돌박이를 함께 구워 먹는다는 설명에 мигом 홀린 듯 주문을 외쳤다. 잠시 후, 사장님께서 푸짐한 한 상을 차려주셨다.

접시 가득 담긴 키조개 관자는 싱싱함이 눈으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도톰하게 썰린 관자에서는 윤기가 흘렀고, 뽀얀 속살은 탄력 있어 보였다. 차돌박이는 얇게 썰려 돌돌 말린 채 나왔는데, 선명한 붉은 색과 하얀 마블링이 입맛을 돋우었다. 큼지막하게 썰린 표고버섯은 갓 수확한 듯 싱싱했고, 넉넉하게 담겨 나온 버터는 고소한 풍미를 예감하게 했다. 이미지 속 넉넉한 양은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느낌을 선사했다.
불판이 달궈지자, 사장님께서 직접 삼합을 구워주셨다. 먼저 버터를 녹이고, 그 위에 차돌박이와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차례로 올렸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차돌박이의 기름이 버터와 섞여 더욱 풍부한 향을 만들어냈고, 키조개 관자는 서서히 익어가면서 촉촉함을 더해갔다. 노릇하게 구워진 삼합을 한 점 집어 입에 넣으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신선한 키조개 관자의 쫄깃함, 차돌박이의 고소함, 표고버섯의 향긋함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특히 버터의 풍미가 더해져, 맛은 더욱 깊고 풍부해졌다.

삼합을 먹는 동안, 밑반찬들도 하나둘씩 맛보기 시작했다. 짭짤하면서도 달콤한 감자조림은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바로 그 맛이었다. 아삭한 짠무는 입안을 개운하게 해줬고, 매콤한 볶음김치는 삼합의 느끼함을 잡아줬다. 특히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두부부침은, 고소한 참깨와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훌륭한 술안주가 되어주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건, 얼음 동동 뜬 짠무였다. 살얼음이 낀 짠무는 보기만 해도 시원했고, 한 입 베어 물면 아삭아삭한 식감과 함께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더운 날씨에 지쳐있던 내게, 짠무는 그야말로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키조개삼합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이번에는 바다장어구이에 도전했다. 민물장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사장님의 추천에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잠시 후, 숯불 위에 올려진 바다장어는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면서 고소한 냄새를 풍겼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구워진 장어를 간장 소스에 찍어 먹으니,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듯했다. 민물장어 특유의 느끼함은 덜하고, 담백한 맛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아쉬운 마음에 스지탕을 추가로 주문했다. 뽀얀 국물에 듬뿍 담긴 스지는 보기만 해도 든든했다. 국물을 한 입 떠먹으니, 깊고 진한 맛이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는 듯했다. 쫀득한 스지는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렸고,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우러나왔다. 스지탕은 술안주로도 좋았지만, 속을 달래주는 든든한 식사로도 훌륭했다.
부원집은 메뉴가 다양하지만, 그날 준비된 재료에 따라 주문 가능 여부가 달라진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날에도 몇몇 메뉴는 이미 재료가 소진되어 주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장님께서는 아쉬워하는 나에게, 다른 메뉴들을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셨고, 덕분에 더욱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이곳은 밥집이라기보다는 술집에 가깝다. 메뉴판에도 공기밥은 없었지만, 밥을 찾는 손님에게는 막걸리를 대신 내어주신다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들렸다. 술을 즐기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지만, 식사를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원집은 테이블이 몇 개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인데다, 사장님 내외 두 분이서 운영하시기 때문에, 친절함이나 빠른 속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느껴졌고, 사장님의 따뜻한 미소는 불친절함이나 느린 속도를 충분히 잊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아쉬웠던 점을 굳이 꼽자면, 가격이 다소 비싸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선한 재료와 정성 가득한 음식 맛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수준이었다. 또한, 가게가 좁은 골목 안에 위치해 있어 주차가 어렵다는 점도 아쉬웠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주변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부원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독특한 메뉴 구성이었다. 흔히 맛볼 수 없는 아구수육이나, 키조개관자삼합 같은 메뉴들은, 이곳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요소였다. 아쉽게도 아구수육은 맛보지 못했지만, 다음에 방문하면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나오는 길, 낡은 벽에 붙어있는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다. 손으로 직접 쓴 듯한 메뉴들은 정겹게 느껴졌고, 그 아래 걸려있는 옷걸이에는 손님들의 외투가 걸려 있었다. 허름하지만 정감 있는 분위기, 이것이 바로 부원집의 매력이 아닐까.

부원집은 화려하거나 세련된 맛집은 아니다. 하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할머니 손맛이 느껴지는 맛있는 음식과 술 한잔을 기울일 수 있는 곳이다.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을 찾는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평범한 날, 편안한 분위기에서 술 한잔하고 싶다면, 부원집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연수동에서 숨겨진 보석 같은 맛집을 발견한 기분이다. 다음에는 꼭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