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평양냉면이 간절하게 당기는 날, 잊고 지냈던 안성의 ‘우정집’이 문득 떠올랐다. 몇 년 전, 우연히 들러 맛본 그 슴슴하면서도 깊은 육수의 맛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주말 아침, 서둘러 차를 몰아 안성으로 향했다. 혹시나 늦을까 조바심치는 마음 한편에는, 그 맛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우정집’ 간판이 보였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가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역시, 이 집의 인기는 여전하구나. 하는 수 없이 줄의 맨 끝에 합류했다.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게는 소박한 모습이었지만, 그만큼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담벼락에는 파란색 간판이 붙어 있었고, 그 아래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냉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었다. 1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드디어 가게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10시 20분쯤 되어 자리에 앉으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테이블은 4인용 테이블이 16개 정도 놓여 있었는데, 1~2명씩 온 손님들이 냉면을 여러 그릇 시키는 덕분에 테이블 회전율이 빠르지는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눈에 띈 것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재료 소진, 영업 종료’ 안내문이었다. 아직 오전 10시인데 벌써 재료가 소진될 위기라니, 이 집의 인기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메뉴는 단 두 가지, 물냉면과 비빔냉면. 고민할 것도 없이 물냉면 하나와 비빔냉면 사리를 주문했다.
주문을 마치자 따뜻한 면수가 나왔다. 슴슴하면서도 은은한 메밀 향이 입안을 감쌌다. 면수를 홀짝이며 기다리니,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냉면이 나왔다. 자리에 앉은 지 20분 정도 지난 후였다.

놋그릇에 담겨 나온 물냉면은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맑은 육수 위로 가늘고 쫄깃해 보이는 면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위로 오이와 삶은 계란, 그리고 얇게 썰린 고기가 고명으로 얹어져 있었다. 마치 갈비탕을 차갑게 식힌 듯 맑고 진한 육수는 한 모금 들이키자 입안 가득 퍼지는 깊은 풍미가 일품이었다. 슴슴하면서도 깔끔한 맛은, 인공 조미료 없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듯했다.
면은 메밀 함량이 높은 듯, 툭툭 끊어지는 식감이 독특했다.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면과 육수를 함께 맛보니, 그 조화가 정말 훌륭했다. 면발은 어찌나 쫄깃한지, 입안에서 탱글탱글 춤을 추는 듯했다. 면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메밀향은 육수의 풍미를 더욱 깊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고명으로 올라온 수육은 얇게 썰려 있었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기름기가 적고 담백해서 냉면과 함께 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특히 삶은 계란은 노른자가 어찌나 고소한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듯했다.

냉면을 반쯤 먹었을 때, 겨자를 살짝 풀어 맛을 보았다. 톡 쏘는 겨자의 향이 슴슴한 육수에 포인트를 더해주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겨자를 넣으니 육수의 감칠맛이 더욱 살아나는 듯했다.
물냉면을 어느 정도 먹고 난 후, 비빔냉면 사리를 맛볼 차례. 붉은 양념이 듬뿍 얹어진 비빔냉면은 보기만 해도 입맛이 다셔졌다. 젓가락으로 비벼 한 입 맛보니, 예상외로 맵지 않고 은은한 단맛이 느껴졌다.
비빔냉면은 일반적인 비빔냉면처럼 자극적인 맛이 아니라,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졌다. 고추장의 텁텁함 없이 깔끔하고, 은은하게 퍼지는 매운맛이 입맛을 돋우었다. 면발은 역시 쫄깃했고, 참기름 향이 살짝 느껴져 더욱 고소했다.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번갈아 먹으니, 질릴 틈이 없었다. 슴슴한 물냉면으로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매콤한 비빔냉면으로 입맛을 돋우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하고 익숙한 맛이랄까.

순식간에 냉면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육수까지 남김없이 들이켜니, 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양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부담 없이 즐기기에 딱 적당했다. 곱빼기를 시킬까 잠시 고민했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이미 재료가 거의 소진되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역시, 조금만 늦었어도 맛보지 못할 뻔했다.
우정집의 영업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토요일은 오전 8시부터이며, 일요일은 휴무이다. 하지만 10시 오픈이라고 알고 오는 손님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준비가 되면 그전에 손님을 받는다고 한다. 주차는 조금 어려운 편이지만, 주변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우정집에서 냉면을 먹고 나오니, 안성에 다른 볼거리가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다. 냉면 하나만을 바라보고 안성까지 왔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만큼 우정집의 냉면은 내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
돌아오는 길, 우정집에서 맛본 냉면의 여운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슴슴하면서도 깊은 육수의 맛, 쫄깃한 면발, 그리고 정갈한 고명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냉면이었다.

우정집의 냉면은 다른 평양냉면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다. 맑은 고기 육수에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여, 깊은 감칠맛을 낸다. 면은 메밀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고, 육수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특히, 인공 조미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먹고 나서도 속이 편안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우정집은 평양냉면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맛집이다. 3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노포의 내공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주인 할머니의 손맛이 그대로 담겨 있는 냉면은,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우정집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생겼다. 우선, 냉면의 양이 예전보다 적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부담 없이 즐기기에 적당한 양이지만, 곱빼기나 사리 추가를 하지 않으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리 추가는 4천원!)
또 다른 아쉬운 점은, 가격이 다소 비싸다는 것이다. 물냉면과 비빔냉면 모두 9,000원인데, 양에 비해 비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맛은 훌륭하지만, 가격까지 고려하면 망설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정집은 여전히 내 마음속 최고의 냉면 맛집 중 하나이다. 슴슴하면서도 깊은 육수의 맛, 쫄깃한 면발, 그리고 정갈한 고명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냉면은,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안성에 갈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 우정집의 냉면을 맛보시길 추천한다.

다음에는 꼭 곱빼기를 시켜서, 냉면을 배불리 먹고 와야겠다. 그리고 비빔냉면도 곱빼기로 시켜서, 물냉면과 함께 번갈아 먹어야겠다. 아, 그리고 다음에는 꼭 평일에 방문해서, 웨이팅 없이 여유롭게 냉면을 즐기고 와야겠다.
덧붙여 우정집은 6월 말, 사장님의 입원으로 잠시 문을 닫았다가 다시 영업을 재개했다. 방문하기 전에 반드시 전화로 영업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재료 소진이 빠르기 때문에, 늦어도 11시 전에는 방문하는 것이 안전하다.

안성에서 맛보는 황해도식 평양냉면, 그 깊고 슴슴한 맛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우정집, 오래오래 그 자리를 지켜주세요! 다음에도 꼭 다시 찾아갈게요.

